Inner Skiing Part. 1

2008. 12. 4. 00:30 from Favorite/Ski


Inner Skiing

by Timothy Gallway and Bob Kriegel

번역: 태극스키도장 설문


 
 
제1장: 패럴렐 회전이 스키의 전부가 아니다

 

스키에는 내가 다른 스포츠에서 경험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마력이 있다. 자연스럽게 몸의 균형을 유지하며 요리조리 회전하면서 비탈을 나는 듯이 내려간다. 머리 속은 얼굴에 부딪히는 찬 공기처럼 맑고 가슴은 햇살처럼 뜨겁게 달아오른다. 이 때마다 나는 나로 하여금 또다시 눈 쌓인 산으로 올라가게 하는 짜릿한 쾌감을 맛본다.

그러나 이런 마력이 불행으로 치달을 때가 많다. 문득 불안한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러운 리듬을 잃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쓸데없이 넘어지는 것이다. 낙담한 나는 차가운 눈에 젖은 몸을 일으켜세우며 회의에 빠진다. 과연 이러면서도 스키를 타야 하는 걸까? 과연 도대체 진전이 없는 것 같은 이런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 내 마음대로 스키를 탈 수 있을까? 다시 스키를 탈 수나 있을까? 뭔가가 믿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다시 해 보라고 부추기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너 스키(Inner Skiing)의 목적은 스키의 마력을 증진시키고 불행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스키의 즐거움과 자유로움을 가로막는 좌절을 피하고, 스키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잘 탈 수 있는 정신 상태에 도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즉, 스키를 한껏 즐기지 못하는 것은 외부적 조건이나 기술 부족 때문이 아니라, 우리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의혹과 두려움과 생각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너 스키를 타면, 자신의 가장 큰 문제이자 따라서 가장 큰 가능성이 자신의 신체적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스스로 설정한 정신적 한계를 극복하는 데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는 두려움과 의혹은 긴장, 경직, 어색함 따위의 형태로 곧바로 몸으로 전달되고, 그에 따라 몸을 유연하게 움직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형을 잘 볼 수도 없게 된다. 이너 스키의 목적은 이러한 정신적 장애를 인식하고 극복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터득하는 것이다. 이 방법을 쓰면 긴장을 풀고 정신을 집중하는 기술을 터득할 수 있으며, 터득하여 행동에 옮기는 자신의 신체적 능력을 믿게 된다. 스키를 잘 타는 비결은 그저 열심히 노력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장 훌륭한 스승은 자신의 경험임을 알게 된다. 자신감을 갖게 되어 실수를 분노와 좌절의 이유로 여기지 않고 배움의 기회로 여기게 된다.

이런 정신적 훈련법은 결코 생소한 기술이 아니다. 우리가 어릴 때 걷거나 말하거나 공을 던지는 법을 배웠던 방법과 똑같은 것이다. 이 방법은 의식보다는 무의식을 쓰며, 배워야 할 필요가 없다.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우리의 타고난 학습 능력을 방해하는 버릇과 생각을 버리고 우리 몸이 타고난 지능을 믿기만 하면 된다.

스포츠마다 그 성격에 따라 독특한 내적 및 외적 문제가 있지만, 이 훈련법의 원리는 거의 모든 스포츠 및 기타 활동에서 똑같다. 테니스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쉴새없이 몸을 움직이면서 시각에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장거리 달리기는 지루함을 극복하고 인내심을 키우는 기회를 준다. 골프는 고도의 정신 집중과 운동 감각 컨트롤을 요구한다. 팀 스포츠는 팀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법과 협동심을 가르쳐 준다. 그럼 스키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까? 패럴렐 회전을 하는 방법보다 더 보편적으로 쓰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터득하는 방법을 깨닫기만 하면 패럴렐 회전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버려라

 


처음으로 스키 부츠를 신고 그 긴 플레이트에 발을 고정시킬 때의 그 이상하고 거북한 느낌이 기억나는가? 비틀거리며 스키를 타려 할 때의 그 무서움이 기억나는가?

거의 모든 스포츠가 공통된 특징이 한 가지 있다. 야구, 농구, 테니스, 골프, 하이킹, 등산, 권투 따위에서는 걷거나 달림으로써 지상을 이동한다. 이런 스포츠의 기본을 모르는 초보자라도 적어도 이동하는 방법은 안다. 그러나 스키에서는 걷거나 달리지 않고 미끄러져야 한다. 전혀 다른 방법으로 지상을 이동하는 것이다. 스키를 신고 서면 단단한 땅 위에 발을 굳게 딛고 서 있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조금만 무게 중심이 바뀌어도 몸의 균형을 잃고 넘어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스키를 탈 때 ‘익숙한 것을 잃는다’는 기본적인 두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이 불안감은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거나 스케이트를 타거나 물에 뜨는 법을 배울 때의 불안감과 비슷하다. 이런 스포츠를 배울 때와 마찬가지로, 스키를 배우려면 우선 이미 알고 있는 균형 감각을 버리고 새로운 균형 감각을 익힐 마음가짐이 되어야 한다. 물론 두려움이 따른다. 수영을 배울 때 우리는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버둥거린다. 스키를 탈 때에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몸에 힘을 주고 꼿꼿이 세운다. 그러나 새로운 매개체에 몸을 담은 채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쓰면 오히려 더 안 된다. 새로운 요소에 저항하면 그에 적응할 수 없는 것이다.

스키를 처음 타는 사람은 불이 꺼진 깜깜한 방에 있는 것과 같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는 바깥 세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주요 수단인 우리 눈은 무용지물이다.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맹목적으로 빛을 찾아 더듬거리다가는 물체에 부딪혀 상처를 입거나 그 물체를 깨뜨릴 수도 있다. 그러나 눈이 어둠에 적응하기를 기다리면 사물이 보이기 시작하고, 우리는 다시 안전하게 느끼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스키를 탈 때에도 무서워하거나 스키가 미끄러지지 않게 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우리 몸은 곧 이 새로운 추진 방법에 익숙해지고, 우리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초보자는 몸을 움직이는 기본적인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는 방법을 고집하려 한다. 그래서 속도를 줄이거나 정지하려 할 때 걷거나 달릴 때처럼 몸을 뒤로 빼면서 발뒤꿈치에 힘을 준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몸을 비탈 위쪽으로 기울인다. 그러나 스키에서는 다른 운동 법칙이 적용된다. 몸을 뒤로 기울이면 속도가 더 빨라질 뿐이다. 비탈 위쪽으로 몸을 기울이면 스키가 앞쪽으로 미끄러져 나간다. 초보자로서는 매우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속도가 줄기는커녕 더 높아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깜짝 놀라 몸을 더 뒤로 기울이게 되고, 결국 속도가 높아져서 균형을 잃고 넘어지게 된다.

나는 처음으로 스키를 탈 때를 결코 잊을 수 없다. 로프토우를 타고 나지막한 언덕 위로 올라가서 다른 초보자들처럼 두 발을 잔뜩 벌리고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끄러지기 시작하자마자 정지하거나 속도를 줄이는 방법을 모른다는 사실에 겁이 덜컥 났다. 거의 반쯤 굽혀진 내 몸은 두려움으로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조금만 근육의 긴장을 풀어도 땅바닥에 곤두박질칠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동상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속도가 너무 빨라지거나 언덕 밑에 도착하기만 하면 뒤로 벌렁 넘어졌다. 그게 내가 아는 유일한 정지 방법이었다. 몇 번 타고 나서 점점 더 빨리 내려오기 시작하자 넘어지는 것도 점점 더 요란해졌다. 나는 덜 고통스럽게 정지하는 방법을 쓴답시고 폴로 내 앞쪽을 찍으려 했다. 넘어질 때마다 입술을 깨물며 더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몸이 더 뻣뻣해졌고 더 잘 넘어졌다.

마침내 나는 자포자기했다. 제기랄, 될 대로 되라지. 속도를 줄이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미끄러져 내려오는 거야. 넘어지면 넘어지는 거고. 이보다 더 못 타지는 않겠지. 그러자 긴장이 조금 풀리고 마음이 편했다. 비탈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이 여전히 무서웠고 내 몸을 마음대로 가눌 수가 없었지만 넘어지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그렇게 몇 번 타고 나자 발에 신긴 스키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몸을 옆으로 기울이거나 뒤쪽이나 앞쪽으로 기울이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내 몸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회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도 있었고 넘어지지 않고 정지할 수도 있었다. 마침내 스키를 타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스키 타는 법을 배우는 것도 발견의 과정이다. 그리고 발견은 경험에서 비롯된다. 이동하는 방법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면, 눈밭을 미끄러지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 수영이나 자전거 타기를 배울 때처럼, 우리 몸은 긴장하지만 않으면 경험에서 터득한다. 비탈을 미끄러져 내려올 때 그런 새로운 경험을 거부하지 않으면, 단순히 새로운 추진 방법 이상 훨씬 더 많은 것을 터득할 수 있다. 뜻밖의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다. 낡은 개념에 대한 집착을 버리겠다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우리는 얼마든지 생소하고 색다른 경험에 적응할 수 있다.

 


두려움을 극복할 기회

 


스키를 점점 잘 타게 되면 더 빨리 타고 더 어려운 코스를 타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잘 아는 코스보다 새로운 코스에 도전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산꼭대기에서 내려오거나 더 어려운 코스에 도전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기는 하지만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이전의 한계를 뛰어넘는 데에는 늘 위험이 따르며 두려움이 따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편안하고 안전한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올 때 시작된 자연적인 성장 과정일 뿐이다. 처음으로 더 어려운 코스에 도전할 때에는 컨트롤을 잃기 쉽다. 넘어져서 다치거나 실패하여 창피를 당할 수도 있다. 위험은 좌우로 흔들거리는 추와 같다. 한쪽 끝에는 성장과 발견의 기쁨이 있고, 다른 한쪽 끝에는 두려움이 있다.

배움에 최대의 장애라고 할 수 있는 두려움은 억제하는 힘이다. 두려움은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보다는 장차 일어날지도 모르는 어떤 일에서 비롯된다. 야키 인디언 마법사인 돈 후안은 이렇게 말한다. “두려움은 인간의 최대의 적이다...이겨 내기 어려운 무서운 적이다...이 막강한 적이 무서워서 도망치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

두려움에 맞서 싸워 이기는 것은 스키에서 가장 어려운 난관의 하나이자 가장 큰 기회이기도 하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사실, 스키를 타는 것보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더 어려울 때가 많다. 돈 후안은 이렇게 말한다. “도망치지 말고 두려움에 맞서 싸워야 한다...그리고 배움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그러면 이 무서운 적이 슬금슬금 물러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나는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게 아니라 스키를 타고 싶을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두려움은 배움을 더디게 한다. 그리고 마음 속에 두려움을 품고 있으면서도 실력이 향상된다면, 그동안 익힌 기술은 비탈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데 국한된다. 이너 스키를 타는 사람은 두려움에 맞서 싸워 이기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스키 실력이 향상될 뿐만 아니라 삶의 질도 향상된다. 이 문제는 제4장에서 보다 자세히 다루겠다.

 


자연과 협력하기

 


스키를 잘 타는 사람이 슬로프를 내려오는 것을 보면 마치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 같다. 몸무게를 좌우로 옮기며 완만한 곡선을 그린다. 다리를 조금만 움직여도 방향이 바뀐다. 너무나 간단하고 자연스럽게 보인다. 초보자의 동작과 비교해 보면 너무나 쉽게 보인다.

스키는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내려가는 것과 비슷하다. 두 가지 운동 모두 생각보다 적은 육체적 및 정신적 노력을 요한다. 자전거를 탈 때를 생각해 보자. 안장에 앉아 손잡이를 잡고 비탈을 따라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속도가 붙으면 손을 조금만 움직여도 자전거가 반응한다. 손을 움직이는 데 힘도 들지 않는다. 회전할 때 몸을 조금만 기울이면 된다.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몸의 균형이 유지되며, 동력은 중력에 의해 발생한다. 스키도 마찬가지이다. 중력에 저항하지 않고 협력하면 힘들이지 않고 탈 수 있다.

거의 모든 스포츠에서 우리는 달리거나 점프하는 힘, 공을 던지는 힘, 라켓을 휘두르는 힘 따위 우리 자신의 힘에 의존한다. 그러나 스키에서는 중력이 힘을 제공하여 우리를 비탈 아래로 끌어당긴다. 우리가 할 일은 정지하거나 회전하거나 속도를 늦추는 등, 중력이 끌어당기는 힘을 조작하는 것뿐이다.

이런 자연력을 조작하는 법을 익히면 일상 생활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변화하는 환경과 다른 사람들과 우리 자신과의 조화를 지키며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중력에 의존하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힘과 화합하여 그것을 이용함으로써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음을 잘 보여 준다.

산 아래에서의 이너 스키 강습회에서 나는 체격이 비슷한 두 명의 지원자를 앞으로 불러냈다. 키드는 수염을 기른 젊은 심리학자였고, 아니는 사십대로서 억세 보이는 부동산업자였다. “서로 마주보고 서서 두 손을 손바닥이 맞닿을 만큼 뻗어 보세요. 이 게임의 목적은 상대방이 균형을 잃게 하는 겁니다. 손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지만 발은 움직이면 안 됩니다. 그리고 손바닥을 펴고 서로 마주대고 있어야 합니다. 자, 이제 시작해 보세요.”

모두들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키드와 아니는 큰 원을 그리며 서로 상대방의 손바닥을 밀기도 하고 속임수 동작을 쓰기도 하며 게임을 시작했다. 아니가 갑자기 세게 밀었다. 키드는 뒤로 넘어질 뻔했지만 다시 균형을 잡고 맞공격을 했다. 그 몇 분 동안 들리는 소리는 두 사람이 서로 공격하며 끙끙거리는 소리뿐이었다. 어느 순간 키드가 이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월등한 힘을 이용하여 아니의 팔을 뒤로 계속 밀쳤다. 곧 아니가 질 것 같았다. 그러나 갑자기 아니가 팔의 힘을 빼 버리자 키드가 균형을 잃고 앞으로 쓰러졌다.

“좋습니다.” 모두들 박수를 치는 가운데 두 사람이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키드와 아니가 서로의 힘에 저항할 때에는 힘을 많이 써서 금방 지쳤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니가 키드의 힘과 화합하여 그것을 이용함으로써 이겼습니다. 모든 무술의 기본 원리인 화합은 스키에서도 쓰일 수 있습니다. 언제 중력의 힘과 화합해야 하며 언제 저항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거죠.”

나중에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슬로프 꼭대기에 서 있을 때, 모두들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다른 슬로프로 옮기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케리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이건 정말 심한데요.” 몇몇이 거들었다.

“저 툭 튀어나온 부분들을 다른 시각으로 보도록 하세요.” 나는 긴장을 풀어 주려고 말했다. “이 슬로프가 아까 그 게임에서 상대방이라고 생각하세요. 모걸에 맞서 싸우려 하지 말고 모걸이 우리가 회전하는 걸 돕도록 이용하는 겁니다.”

모두들 망설였지만 일 주일 내내 침묵을 지키고 있던 다이앤이 불쑥 나섰다. “우리를 도와 주는 모걸에 고맙다고 할 수도 있어요.”

“좋아요. 모걸에마다 고맙다고 해 봅시다.” 키드가 먼저 출발했다.

모두들 키드의 뒤를 따랐다. 여덟 사람이 고맙다고 소리를 지르며 그 어려운 슬로프를 내려가는 모습은 정말 우스웠다. 모두들 긴장을 풀고 더 잘 타는 것 같았다. 넘어지는 사람도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슬로프를 내려오자 모두들 유쾌하게 웃으며 다시 한 번 해 보자고 했다. 우리의 적과 친해지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고 우리의 스키 실력을 크게 향상시켜 주었다.

 


상황에 따른 스키

 


스키는 변화무쌍한 스포츠이다. 슬로프를 내려올 때마다 달라진다. 오전에는 부드럽고 매끄러웠던 눈이 오후에는 단단하고 울퉁불퉁해진다. 모걸도 사람들이 쓸어내린 눈이 쌓여 점점 커진다. 기온의 변화나 햇빛 때문에 슬로프의 표면도 달라진다.

올림픽 3관왕인 장클로드 킬리는 이렇게 말한다. “스키는 다양성의 스포츠이다. 산과 우리 자신에게서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다양한 상황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가루눈이 쌓여 있는 상태에서는 스키 뒤쪽으로 약간 주저앉는 자세가 되지만, 눈이 단단하게 다져진 상태에서 이런 자세를 취했다가는 균형을 잃게 된다.

나는 겨우 몇 시간 전에 처음 알게 된 슬로프를 타 본 적이 많다. 이 때 슬로프를 잘 안다고 생각하면 방심하다가 뜻밖의 상황에 마주치게 된다. 갑자기 빙판이나 맨땅이나 새로운 모걸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럼 나는 균형과 리듬을 잃게 되고 넘어질 수도 있다. 슬로프에 대해 미리 예상하고 있으면 진정한 체험을 할 수 없다. 슬로프를 지금의 상태대로 보지 못하고 이전의 모습대로 보거나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뭔가에 마주치면 놀라게 된다. 산이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똑같은 슬로프라도 내려갈 때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면 더 조심하게 된다. 스키와 눈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지며 지형의 변화에 대한 민감성도 더 높아진다. 정신이 이런 경각 상태에 있으면 몸이 균형을 잃지 않고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다. 그럼 스키 실력이 향상될 뿐만 아니라 더 재미있다.

이 세상에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변화는 유일한 상수라는 것을 깨달으면 모든 지각이 더 예민해진다. 세상을 과거의 개념으로 보지 않고 현재 상태대로 보기 시작한다. 현재가 살아 숨쉬는 것처럼 느껴지며, 매순간에 내재된 새로움과 색다름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

 


여유를 가져라

 


나는 뉴욕에서 살 때 단 며칠만이라도 시멘트 건물과 공해와 번잡함에서 벗어나 시골에서 지내고 싶었다. 숲 속을 거닐며 발에 밟히는 흙을 느끼고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었다. 그래서 주말만 되면 도망치듯 시골로 달려가곤 했는데, 얼마나 급했던지 내가 어디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 때 뭘 했냐고? 물론 스키를 탔다. 친구들과 함께 금요일 저녁에 출발하여 다섯 시간 동안 차를 몰고 가서 녹초가 되어 도착하곤 했다. 그래도 우리는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대충 먹고 산으로 올라가 하루 종일 스키를 탔다. 점심도 먹지 않고 탔다. 쉴 때라고는 리프트를 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릴 때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결코 쉰 것이 아니었다. 줄이 빨리 줄어들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며 안달했던 것이다. 어쩌다가 리프트가 멈추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일 초가 한 시간 같았다.

그 때 내 모습을 생각해 보면, 차라리 맨해튼 지하철에서 스키를 타는 게 나았을 것 같다. 물론 주위 환경을 돌아보기는 했다. 하지만 그 목적은 리프트를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얼마나 될지, 또는 어느 슬로프의 눈이 가장 좋은지 보기 위해서였다.

어느 토요일이었다. 나 혼자 널따란 슬로프를 내려가고 있는데, 30미터쯤 내려갔을 때에야 눈이 단단하게 얼어붙어서 스키를 탈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꼭대기로 올라가기에는 너무 멀었기 때문에 옆에 있는 슬로프로 건너가서 꼭대기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정말 화가 났다. 이 시간에 스키를 타도 모자랄 판에 이게 무슨 짓이야... 옆에 있는 슬로프의 꼭대기에 도착했을 때, 나는 숨이 차서 잠시 서서 쉬어야 했다. 그 순간 햇빛에 빛나는 하얀 눈밭이 눈에 띄었다. 눈밭이 무지갯빛으로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문득 몇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스키를 타면서도 진정으로 눈을 떠 본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무들과 눈과 하늘과 수평선 위 먼 산들의 희미한 윤곽을 난생 처음 보듯이.

그 날 저녁, 나는 자연과의 그 황홀한 만남의 감동을 잊지 못한 채 친구들과 어울려 파티에 가지 않고 숙소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벽난로 안에서 너울너울 춤추는 불꽃을 바라보며, 그동안 내가 스키를 탄 방식이 내 삶을 그대로 나타낸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일을 급히 서둘러 했다. 일하고, 집에 돌아오고,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갔다.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낙오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눈밭에 반사된 그 영롱한 햇빛을 본 것은 스키뿐만 아니라 삶 자체에 대한 나의 태도를 바꾸어 놓았다. 이제 나는 한 번이라도 더 타려고 급히 비탈을 내려오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내 몸의 흥분을 느끼며 주위 환경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싶다. 더 많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스키를 타는 것도 그렇고 소유하는 것도 그렇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양보다는 질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즐기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다

 


그 목적이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거나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인 스포츠에 참가할 때, 우리는 흔히 스코어와 골과 최종 목표를 생각한다. 오직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며, 이기고 있지 않을 때에는 즐거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스키의 즐거움은 완전히 몰두하는 데 있다. 몸이 움직이고 있을 때의 느낌에, 회전을 잘 해 냈을 때의 기쁨에, 자연스러운 리듬과 흐름의 느낌에 있다. 스키의 목적은 우리 자신 및 환경과의 조화를 느끼는 것이다. 스키의 보람은 그 과정 자체에 있다. 그래서 스키는 우리의 목표지향적 일상 생활에서 흔히 간과되는 뭔가를 일깨워 준다. 즉, 과정을 즐기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목표에 이르는 것이 무의미하다. 더 나아가, 모든 게임은 그것을 즐겨야 이길 수 있다.

그러므로 스키는 패럴렐 회전을 배우는 것이 그 전부가 아니다. 스키가 배우는 방법을 배우고, 두려움과 자기불신을 극복하고, 정신집중력과 자연에 대한 이해력을 키우게 해 준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 스키는 레크리에이션의 본디 의미, 즉 재창조가 된다. 스키 실력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기술을 배우는 한편 자신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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